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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OMMAND

여왕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feat. 로열젤리

 

 

 

달콤한 꿀의 공급자이자 정교한 건축가이자 개미와 더불어 독특한 계급 사회를 이루는 대표적인 곤충, 꿀벌
꿀벌 군락의 정점엔 여왕벌이 있고, 여왕벌은 일생을 알 낳기와 번식에만 투자하죠.

분단 1-2개씩, 하루에 1000개~2000개씩 살아있는 동안 무려 200만 개의 알을 낳습니다.
반면, 먹이를 찾고 집을 짓고 벌집 청소를 하는 건 모두 일벌의 몫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여왕벌은 태어날 떄부터 금수저가 아니란 겁니다.

일벌과 여왕벌은 둘 다 암컷이며 같은 크기의 알에서 똑같은 크기의 유충으로 태어나고  겉모습뿐만 아니라 이 둘은 유전적으로도 별 차이가 없는 그냥 평범한 자매죠. 

 

 

 


그렇다면 도대체 여왕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기존 여왕벌이 죽거나 혹은 짝짓기를 마친 여왕벌이 새로운 군락을 건설하기 위해 기존 군락을 떠나는 상황이 되면 기존 벌집엔 새로운 여왕벌이 필요해지는데  이때, 일벌들은 여왕벌이 낳은 수많은 알 중에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시킬 알을 선택해야 하죠.

 

 

로열젤리


그리고 여기서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로열젤리"가 등잡합니다.
일벌들은 알에서 부화한 "모든" 유충들에게 머리의 인두샘에서 분비한 로열젤리를 먹이는데 이게 어찌나 영양가가 좋은지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 유츙은 태어난 지 5일 만에 몸무게가 무려 1000배 가까이 늘어나죠.

 

 

 

 

인간의 아기에 비유하면 태어난 지 5일 만에 신생아의 몸무게가 3톤이 되는 겁니다.
처음에 일벌은 모든 유충에게 로열젤리를 먹이지만 72시간 정도가 지나면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벌은 몇 개의 유충만을 골라 이들이 있는 방을 넉넉하게 넓히고 이들에게 유충기가 끝날 때까지 오직 로열젤리만 먹이는데요.
바로 이 유충들이 훗날 여왕벌이 될 녀석들이죠.

 

 

 


반면, 나머지 유충에게는 "로열젤리"의 공급은 서서히 줄이고 점차 꽃가루와 꿀을 섞어 만든

"먹이(Bee Bread)"를 먹이는데  바로 이 로열젤리의 양적 차이로 인해 어떤 유충은 여왕으로 어떤 유충은 일벌로 자랍니다.


이 둘은 유전적으로 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로열젤리 하나 때문에 크기와 생식 능력은 물론,  수명도 50배나 차이나게 되죠.

 

 

 


이렇듯 꿀벌 사회는 "먹을 걸"로 "신분"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앞서 여러 마리의 유충을 여왕벌로 키워낸다고 했는데 사실, 벌집 군락엔 단 한 마리의 여왕벌만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성장을 마친 여왕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주 여왕벌들을 침으로 찔러 죽이죠.
참 가차 없죠? 그리고 만약 여왕벌이 동시에 두 마리가 태어난다면 하나만 남을 때까지 혈투를 벌이며 결국엔 끝장을 봅니다. 

 

 


자 ~ 그런데 여왕벌이 될 유충은 무슨 기준으로 선택될까요?
로열젤리 속 무엇이 여왕벌을 만들었을까요?

 

 

 


그동안 과학자들은 일벌과 여왕벌은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여왕벌이 될 유충은 랜덤하게 선택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중국농업과학원의 리 지엔크어 박사는 일꾼이 될 녀석과 여왕이 될 녀석은 유전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실험 결과, 여왕벌로 자랄 유충은 태어났을 때부터 일벌로 자랄 유충보다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 물질 대사와 세포 성장, 그리고 세포 분화에 필요한 단백질을 훨씬 더 많이 발현했죠. 

 

유충을 키우는 일벌이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부터 알아보고 계속 로열젤리를 공급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태생적 차이가 있더라도 로열젤리란 물질적 지원 없이는 여왕이 될 수 없는데요.

 

 

 

일반 유충에게 로열젤리를 주입한 실험

 

 

같은 해, <네이처>에 로열젤리의 비밀을 풀어 줄 논문도 발표됩니다.

일본의 마사키 카마쿠라 교수는 40도씨로 가열시킨 로열젤리를  꿀벌 유충에게 먹이는 실험을 하는데 결과를 보니
" 아무리 많이 먹여도 여왕벌로 성장하지 못하잖아?"
알고보니 40도씨에서는 로열젤리를 구성하는 물질 중 "로열락틴"이란 단백질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죠.
그는 이 로열락틴이 유충을 여왕벌로 만드는 핵심 물질이라고 생각했고, 추가 실험에서 유충에게 로열젤리에서 추출한 로열락틱만 먹여도 유충이 여왕벌로 자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로얄락틴을 먹인 벌의 크기 변화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초파리에게 로열락틴을 먹여 보는데요.
그랬더니..놀랍게도 로열락틴을 먹은 초파리조차 여왕벌처럼 몸집이 커지고 배도 불룩해졌으며  알도 2배나 많이 낳았습니다.

이후 로열락틴은 곤충의 세포를 증식시키고 세포의 수명을 늘리는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고 여러 후속 연구에서 로열락틴뿐만 아니라 로열젤리 속 여러 물질들이 꿀벌 유충의 체내에서 DNA의 발현과 호르몬을 조절하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이렇게 당연하게도 로열젤리는 여왕벌을 만드는 핵심 요소로 굳혀지는 듯 했는데..

 

 

 

 


2017년 로열젤리가 곧 여왕벌을 만든다는 관점을 180도 바꾸는 파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됩니다.
중국 난징대학교의 천시 교수는 여왕벌이 되는 건 "로열젤리만"먹기 때문이 아니라 "꽃가루와 꿀을 먹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거죠.

자 , 이해를 돕기 위해 초반 얘기로 돌아가면 간택받지 못한 유충에겐 로열젤리의 양을 서서히 줄이고 그 대신 꽃가루와 꿀을 먹이로 공급한다던 얘기 기억하시나요?

바로 이 "꽃가루와 꿀"이 유충이 여왕벌로 자라는 걸 막는 핵심 인자라는 겁니다.

꽃가루와 꿀에는 식물의 miRNA가 들어 있는데  바로 이 miRNA가 벌 유충의 세포 안에 들어가 난소의 성장과 관련된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시켰던 거죠.
한마디로, 좋은 걸 먹여서 여왕이 된 게 아니라  나쁜 걸 안 먹여서 여왕이 된 겁니다. 

그런데 여왕이 되는 게 꼭 좋은 걸까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일벌이나 알 낳는 기계가 되는 여왕이나  둘 다 모두 좋은 선택지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어쨋든 먹이 하나로 신분이 결정되는 꿀벌의 생태가 놀랍긴 하네요.